캐리어

노란색 캐리어가 쓰레기장에 버려진 지 3주가 지났다. 캐리어의 삶이 평탄했을 리는 없다. 평소에는 베란다나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놀러간다며 들떠서 나오면 음습한 트렁크나 비행기 화물칸에서 오랜시간을 보내야 하고, 도착해서는 이리 덜덜덜 저리 덜덜덜, 그나마 그 일생에서 가장 편할 때는 호텔방에서 낮잠을 잘 때가 아닌가. 그런 영욕의 삶을 간직했을 노란색 캐리어가 버려진 지 오래 되었다. 캐리어는 재활용품도 아니고 쓰레기봉투에 담겨져 있지도 않고, 음식물 쓰레기도 아니고, 구청에서 딱지 받은 대형쓰레기도 아니라서, 아무도 수거해가질 않았다. 그렇다고 누가 가져가서 쓰기엔 그 행색이 조금 남루한데다, '노란색'이라곤 했지만 병아리떼쫑쫑쫑이나 나리나리개나리가 떠오를만한 예쁜 노란색이 아니라서, 남자가 쓰기에도 그렇고 여자가 쓰기에도 그렇고 애들이 쓰기에도 그런 녀석이니, 주워가는 사람도 없는 거다. 게다가 여기가 사람 통행이 많은 길이 아니고, 이 쪽에 살지 않으면 딱히 올 일 없는 꼭대기라, 생명 연장에는 취약한 곳이니. 1주가 지나고 2주, 3주가 되어도 그 자리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때는 한 여름의 찜통 더위에, 그 사이에 태풍도 다녀가서 노란색은 탁한황토색으로 변했으니, 사람이나 가방이나 죽기 전의 눈물겨움은 다 똑같은가보다. - 그리고 며칠 전에 누가 주워갔는지 치웠는지 아니면 거대 고양이가 한입에 삼켜버렸는지, 감쪽 같이 사라져버렸다. 3주 정도 퇴근길마다 마주하다보니, 저녁 동네 계단에 매일 그 시간이면 앉아 있는 노인 양반이 어느 날부턴가 안 보이는 것과 같은 허전함이 들더라. 뭐, 허전한 것 투성이지만.

by | 2009/08/20 11:01 | 2009 | 트랙백 | 덧글(8)

굼벵이

매미의 계절이다. 자연의 울음이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지만, 새벽녘의 우렁찬 매미떼 울음은 그냥 이런 썅이다.

매미가 매미로 지내는 시간은 대략 1,2주 정도이고, 그 전에 5년인가 7년인가를 땅 속에서 굼벵이란 존재로 살아가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때문에 대개 매미의 일생을 안타깝다고 그러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건 그 생물체의 주를 매미로 판단할 때 이야기일 뿐이고, 내 생각에 그 생물체의 주는 굼벵이다. 사람들이 매미 이전의 굼벵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건, 굼벵이로서의 삶을 무시하는 행위다. 아무리 '잠깐의 매미가 되기 위해 긴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매미에게서 희망을 배우자'고 아름답게 이야기해봐야, 결국 '굼벵이로 사는 건 별 의미 없는 일이고 매미가 진짜 인생이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거다. 땅 속에 산다고 무시하는건가? 좀 못 생겼다고 무시하는건가? 굼벵이의 인생을 그 자체 그대로 존중해 줘. 굼벵이가 매미의 데모 버전이 아니라, 매미가 굼벵이의 보너스팩 버전이라고.

굼벵이가 한 세상을 다 살아간 이후에, 승천할 때가 되면 접신을 하기 위해 매미가 된다. 신을 목 놓아 부르짖으며 갈 때를 기다리는 거지. 그러다가 비가 내려 신을 부를 수 없게 되면, 내가 일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반성하고, 신이 나를 버리진 않을까 걱정하고, 날이 개면 더욱 더 열심히 신을 찾으리라 다짐하고, 그러는 거다. 그래서 어제처럼 굵은 비 그치고 맑은 하늘 무지개 쫙 뜨는 날에는, 더 가열차게 울어대는거라고. - 신이 좋은 짝 마련해주면, 저 닮은 생명 낳아놓고 가는 거고, 아니면, 불쌍하게 처녀총각으로 안녕.

그러니까, 굼벵이를 무시하지 마. 지하방에 허름한 옷 입고 가난하게 살아도, 나름의 인생이 있고 그 안에도 행복이 있어.

- 상관없지만, 굼베이 댄스 밴드의 엘도라도나 들어보자.

by | 2009/08/13 11:09 | 2009 | 트랙백 | 덧글(4)

뇌를 단련하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뇌를 단련하다'를 3주간 읽었다. 제목 때문에 단순 두뇌 개발서인줄 알았더니, 천만의 말씀. 완전 유식한 양반이 완전 유식한 티를 내는 책인데, 내용도 알차고, 그 지식의 폭과 깊이에 종종 감탄이 나온다. 요점을 말하자면, "liberal art가 중요해"이다. '대학에 왔으니 학문을 닦자'는 순진한 생각을 가진 대학생 새내기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만한 책이다. 대학을 어물쩡 스쳐간 일반인에게도 지적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대학에선 공부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놀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하면 어차피 뭔가 후회하게 되어있다. 공부 안했던 것도 그 때 같이 후회하면 된다.) 이 양반의 책이 집에 몇 권 더 꽂혀 있는데, 마저 꺼내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심어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도쿄대에서 강의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이 강의를 들은 학생들, 참 존경스럽다. 내 수준으로는 책 중반부를 읽는 것이 꽤나 힘겨웠다. 폴 발레리의 '테스트 씨와의 하룻밤'이란 책을 두고 데카르트, cogito 등등을 이야기하는데, 도저히 못 알아먹겠는 거다. 난 역시 교양이 부족해,라며 자책하던 중에 다카시는 C.P.Snow의 '두 문화와 과학 혁명(1959)'를 언급하며 이야기의 중심추가 옮겨간다. "문학적 지식인이 한쪽 극에 있고 다른 쪽 극에는 과학자, 특히 그 대표격으로 물리학자가 있다. 그리고 이 두 극 사이를 서로간의 몰이해, 때로는 적의와 혐오감이 격리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서로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일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언급하며 과학자들의 무지를 탓하는 문학적 지식인에게 '열역학 제 2법칙'에 대해 물어보면 다들 모른다. 과학에서의 열역학 법칙은 문학에서의 셰익스피어만큼 기본적인 거다. 그러면서 문학적 지식인만이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내용은 한편으론 신선했다. - 책의 후반부는 상대성 이론과 패리티 비보존 등에 대해 설을 풀어놓는데, 출신 성분을 속일 순 없는지 그런 내용에서는 흥겹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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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좀 제대로된 포스팅을 하고 싶었으나, 그냥 대충 써버리기로 했다. 사소한 것에는 신경쓰지 말아야지. 그래서 머리에서 튀어나오는대로 글을 쓰고 말았다. 다시 읽어보니 엉망이다. 하지만 참 좋은 책입니다, 올해 읽은 책 중엔 뇌 맛사지에 가장 좋은 책이었어요.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 중의 하나는, 똑똑한 놈은 어떤 의미로든 재수 없다, 는 거다. 내 생각에 기본이 아닌 걸 자꾸 기본이라잖아.

by | 2009/08/11 16:55 | 2009 | 트랙백 | 덧글(4)

삶을 즐기는 비결

"삶을 즐기는 비결은 두 가지뿐이야."
가와사키가 경쾌하게 말했다.
"클랙슨을 울리지 않는 것과,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
-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코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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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기간에 시간이 많다보니 생각도 많았는데,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라는 영원한 문제도 생각의 틈에 꽂혀있었다. 북카페에서 에어컨 바람 맞으며 낙서를 하다가 갑자기, '적어도 시간을 버리진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시간을 버리는 일인지가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난 잠도 푹 자야하고, TV도 봐야하고, 야구도 봐야하고, 블로그질도 해야하고, 책도 읽어야하고, 낙서도 해야하고, 멍도 때려야하며, 시간이 나면 영어 공부도 조금은 해야한다. 물론 회사도 가야지. 도대체 시간을 버릴만한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어딘가 새고 있는 듯한 찝찝함은 뭘까. ... 그리고 어제 밤에 생각했다. 볼만한 방송이 없다고 채널을 몇바퀴씩 돌리는 순간이 그 찝찝함의 근거가 아닐까. 흠. 그래 그럴거면 차라리 잠이나 자는 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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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까지 신경을 쓰게 된 건, 서른 즈음부터가 아니었을까. 내 삶에 대해 오지랖이 넓어졌어. 지나가는 건 지나가게 두면 되는 것을.

by | 2009/08/11 16:01 | 2009 | 트랙백 | 덧글(2)

습관

아침에 일어나면 TV를 켠다. 그것이 첫번째 일이다. 오래 전부터 생겨난 습관이다. 아침에 눈을 떠도 인사할 사람이 없을 때부터 생긴 것일테다. 그 때는 여러가지 심리적인 문제가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저 습관이다. 좋은 습관이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돌이킬수록 반짝거렸고 그래서 더 아쉬운 나의 이십대가 남긴 습관이다. 딱히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방송의 장점이란 내게 선택권이 없다는 거다. on demand service는 욕구 충족의 매력이 있지만, 사람들은 매순간 선택을 할만큼 부지런하지 않다. 게다가 TV 앞에서까지 자신의 욕구를 들여다보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힘빠지는 일이다. TV를 켜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영상이 흘러나온다. 뉴스 채널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이가 나와서 떠들기 때문에 우연성의 재미가 떨어지지만, 영화 채널은 그 우연의 재미가 좋다. 하루의 처음에 만나는 영화라니, 그럴싸하지 않나. 평일에는 길어야 고작 5분쯤 보다가 출근 준비를 하지만, 하루를 밑그림하기엔 모자르지 않다.

오늘은 무지개여신이었다. 휴가이므로, 끝까지 볼 수 있었다. 휴가란 건 이래서 좋은 것인가. 라고 생각했다.

by | 2009/08/06 09:37 | 2009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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