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20일
캐리어
노란색 캐리어가 쓰레기장에 버려진 지 3주가 지났다. 캐리어의 삶이 평탄했을 리는 없다. 평소에는 베란다나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놀러간다며 들떠서 나오면 음습한 트렁크나 비행기 화물칸에서 오랜시간을 보내야 하고, 도착해서는 이리 덜덜덜 저리 덜덜덜, 그나마 그 일생에서 가장 편할 때는 호텔방에서 낮잠을 잘 때가 아닌가. 그런 영욕의 삶을 간직했을 노란색 캐리어가 버려진 지 오래 되었다. 캐리어는 재활용품도 아니고 쓰레기봉투에 담겨져 있지도 않고, 음식물 쓰레기도 아니고, 구청에서 딱지 받은 대형쓰레기도 아니라서, 아무도 수거해가질 않았다. 그렇다고 누가 가져가서 쓰기엔 그 행색이 조금 남루한데다, '노란색'이라곤 했지만 병아리떼쫑쫑쫑이나 나리나리개나리가 떠오를만한 예쁜 노란색이 아니라서, 남자가 쓰기에도 그렇고 여자가 쓰기에도 그렇고 애들이 쓰기에도 그런 녀석이니, 주워가는 사람도 없는 거다. 게다가 여기가 사람 통행이 많은 길이 아니고, 이 쪽에 살지 않으면 딱히 올 일 없는 꼭대기라, 생명 연장에는 취약한 곳이니. 1주가 지나고 2주, 3주가 되어도 그 자리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때는 한 여름의 찜통 더위에, 그 사이에 태풍도 다녀가서 노란색은 탁한황토색으로 변했으니, 사람이나 가방이나 죽기 전의 눈물겨움은 다 똑같은가보다. - 그리고 며칠 전에 누가 주워갔는지 치웠는지 아니면 거대 고양이가 한입에 삼켜버렸는지, 감쪽 같이 사라져버렸다. 3주 정도 퇴근길마다 마주하다보니, 저녁 동네 계단에 매일 그 시간이면 앉아 있는 노인 양반이 어느 날부턴가 안 보이는 것과 같은 허전함이 들더라. 뭐, 허전한 것 투성이지만.
# by | 2009/08/20 11:01 | 2009 | 트랙백 | 덧글(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