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1일
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침이 고인다", 문학과지성사, 2007.09
1_ 이 소설집은 『도도한 생활』이라는 소설로 시작한다. 지하방이 나오고, 그 안으로 들이치는 빗물이 나온다. 지하단칸방에 비가 차오르면 나는 그것이 무슨 이야기든지 울어버리고야 만다. 이번에도 김애란 소설을 울면서 읽어야 하겠구나, 생각한다.
2_ 김애란 소설에는 부족한 아버지가 나오고 억척스런 엄마가 나오고 때로는 그 둘 중의 하나가 죽거나 그 중의 하나와 이별하곤 한다. 그런게 슬퍼서 김애란 소설을 읽을 수 밖에 없다. 슬퍼서 위안을 받는다. 참 다양한 모양새의 부족한 아버지와 억척스런 엄마가 있구나. 내가 뭐 특별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구나. 그렇게 글을 읽으면 내 어린날의 굴곡이 가파른 돌산의 계곡에서 동네 뒷산 언저리 정도로 바뀐다. 그래서 조금 고맙다.
3_ '방'이 있다. 김애란이 계속 방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쓸데없이 긴) 이 책의 해설을 굳이 참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도도한 생활』에서는 지하단칸방이고, 『침이 고인다』에서는 13평 원룸이고, 『성탄 특선』에서는 남매가 함께 쓰는 단칸방이고, 『자오선을 지날때』에서는 4인용 독서실이고, 『기도』에서는 신림동 고시원이고, 『네모난 자리들』에서는 학교 근처 골목과 골목을 굽이쳐 들어간 3층의 방이다. 여기서 '방'은 곧 '집'이다. 난 10대가 되던 해부터 작년까지 줄곧 방이 집이었다. 기억나진 않지만 태어나서 4살까지도 방이 곧 집이었다. 정말 갖가지 방들이었다. 그 방들에는 내 공간이 오롯이 이 것뿐이라는, 사실 이 공간마저도 내 것은 아니라는 절망이 숨어있다. 그 방에 홀로 앉으면 한없는 외로움이 밀려들고 여럿이 앉으면 땀에 젖은 궁핍함이 밀려든다. 방이란 그런 것이었다. 다만 그것은 긴 해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4_ 『침이 고인다』가 『달려라, 아비』와 달라진 점이라면, 하드 커버가 되었고, 작가 사진이 백오십만배쯤 세련되어졌으며, 출판사가 바뀌었고, 작가의 말이 '...습니다' 체에서 '...했다' 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500원 비싸졌다. 단편의 모음집이라 큰 변화를 기대키 힘들다해도, 단편들을 제 맘대로 섞어 다시 두 권으로 나누어도 똑같을 것 같은 느낌이라 조금 실망했다. 이 책을 두고 "다시, 김애란이다!"라고 광고한 데에는 그런 것도 몰래 숨겨져 있었다. 다음에도 '또다시, 김애란'이 되면 아무리 그녀를 예뻐한다한들 '또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 그런 면에서 『플라이데이터리코더』는 좋았다.
1_ 이 소설집은 『도도한 생활』이라는 소설로 시작한다. 지하방이 나오고, 그 안으로 들이치는 빗물이 나온다. 지하단칸방에 비가 차오르면 나는 그것이 무슨 이야기든지 울어버리고야 만다. 이번에도 김애란 소설을 울면서 읽어야 하겠구나, 생각한다.
구정물은 화장실에 버리고, 마른 수건으로 한 번 더 물기를 없앴다.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언니 말대로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쯤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한바탕 집 안을 정리하고 숨을 돌리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 상쾌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조금 전 물기를 닦아낸 곳에 다시 빗물이 고여 있었다.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이었다. (......) 물은 계단과 창문을 타고 자꾸자꾸 들어왔다. 안되겠다 싶어 쓰레받기 대신 바가지를 이용했다. 내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온몸에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렸다. 밖에선 천둥소리가 났다. 무모한 일을 하는 것 같아 힘이 빠졌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었다. - 『도도한 생활』 중에서
2_ 김애란 소설에는 부족한 아버지가 나오고 억척스런 엄마가 나오고 때로는 그 둘 중의 하나가 죽거나 그 중의 하나와 이별하곤 한다. 그런게 슬퍼서 김애란 소설을 읽을 수 밖에 없다. 슬퍼서 위안을 받는다. 참 다양한 모양새의 부족한 아버지와 억척스런 엄마가 있구나. 내가 뭐 특별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구나. 그렇게 글을 읽으면 내 어린날의 굴곡이 가파른 돌산의 계곡에서 동네 뒷산 언저리 정도로 바뀐다. 그래서 조금 고맙다.
어느 날, 나는 내가 진정으로 배곯아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리둥절해진 적이 있다. 궁핍 혹은 넉넉함을 떠나, 말 그대로 누군가의 순수한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년간 감당해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놀라웠던 까닭이다. 오랜 세월, 어머니는 뭘 재우고, 절이고, 저장하고 크게 웃고, 또 가끔은 팔뚝의 때를 밀다가 혼자 울었다. - 『칼자국』 중에서
3_ '방'이 있다. 김애란이 계속 방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쓸데없이 긴) 이 책의 해설을 굳이 참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도도한 생활』에서는 지하단칸방이고, 『침이 고인다』에서는 13평 원룸이고, 『성탄 특선』에서는 남매가 함께 쓰는 단칸방이고, 『자오선을 지날때』에서는 4인용 독서실이고, 『기도』에서는 신림동 고시원이고, 『네모난 자리들』에서는 학교 근처 골목과 골목을 굽이쳐 들어간 3층의 방이다. 여기서 '방'은 곧 '집'이다. 난 10대가 되던 해부터 작년까지 줄곧 방이 집이었다. 기억나진 않지만 태어나서 4살까지도 방이 곧 집이었다. 정말 갖가지 방들이었다. 그 방들에는 내 공간이 오롯이 이 것뿐이라는, 사실 이 공간마저도 내 것은 아니라는 절망이 숨어있다. 그 방에 홀로 앉으면 한없는 외로움이 밀려들고 여럿이 앉으면 땀에 젖은 궁핍함이 밀려든다. 방이란 그런 것이었다. 다만 그것은 긴 해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미간을 찌푸려 천장을 살펴보았다. 두식 선배의 글씨였다. 그것은 선배가 좋아했던 시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갑자기 얼굴 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 『네모난 자리들』 중에서
4_ 『침이 고인다』가 『달려라, 아비』와 달라진 점이라면, 하드 커버가 되었고, 작가 사진이 백오십만배쯤 세련되어졌으며, 출판사가 바뀌었고, 작가의 말이 '...습니다' 체에서 '...했다' 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500원 비싸졌다. 단편의 모음집이라 큰 변화를 기대키 힘들다해도, 단편들을 제 맘대로 섞어 다시 두 권으로 나누어도 똑같을 것 같은 느낌이라 조금 실망했다. 이 책을 두고 "다시, 김애란이다!"라고 광고한 데에는 그런 것도 몰래 숨겨져 있었다. 다음에도 '또다시, 김애란'이 되면 아무리 그녀를 예뻐한다한들 '또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 그런 면에서 『플라이데이터리코더』는 좋았다.
# by | 2007/12/11 21:43 | 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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