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선

***강호파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전승되는 팔자 고치는 법이 있다. 간추리면 대강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적선, 둘째는 명상, 셋째는 풍수를 공부해서 명당을 잡는 일, 넷째는 독서, 다섯째는 지명知命이다. 팔자를 고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고금을 막론하고 적선이다. 가진 것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 한다. - '조용헌의 담화', 조용헌, p.147

내 명을 알만한 혜안을 갖기란 쉽지 않고, 풍수를 공부해 안다해도 풍수 좋은 곳에 살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 남은 것은 세가지다. 세상이 바쁘단 핑계를 대어 명상 하기도 뒤로 미룬다해도, 책 읽고 적선하는 것 쯤은 할 수도 있겠다. 책이야 틈틈이 읽으니 그렇다치고, 문제는 적선이다. 베푼만큼 돌아온다고 하던데, 베풀고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참지 못해 나누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생기면 베풀어야겠다 생각하지만, 모아도 모아도 모자라는 것이 재물이고, 그러다보면 베풀 재물은 평생가도 없게 마련이다. 너무 꽉 쥐면 확실히 건지기야 하겠지만 남은 것은 손의 크기만큼일테다. 적당히 쥐어야 더 많이 잡을 수 있다. 돈이든 몸이든 시간이든 남에게 떼어 주려면 여유를 길러야 하고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 그러니 적선도 쉬운 일이 아니다. 팔자 고치기가 쉬우면 다들 고쳤겠지.

***명리학의 견지에서 볼 때 재물이란 태어난 날의 천간이 극하는 것이다. 극한다고 하는 의미는 싸워 이겨서 집어삼키는 대상을 말한다. 재물이란 쟁취의 대상인 것이다. (...) 이와 반대로 싸움을 하지 않고 순리를 따라서 돈을 버는 팔자도 있다. 식신생재食神生財 사주이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식신이란 베풀기 좋아하는 기질을 말한다. 식신생재란 내가 먼저 베풀어 놓으면 그것이 스리쿠션으로 작용하여 다시 재물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되돌아올 때는 몇 배의 이자가 보태져서 돌아오기 마련이다. (...) 베풀지 않고 움켜쥐는 데만 골몰하는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 뒤끝이 좋지 못하다. 명리학에서는 그것을 재다신약財多身弱이라고 풀이한다. 사주에 재물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몸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재다신약 사주는 재물의 무게에 눌려서 병으로 골골하거나, 단명하게 된다. 풀지 않고 자꾸 가두어 놓기만 하는 재물은 결국 재앙으로 되돌아온다는 법칙을 상기시키고 있다. 베풀어야 돈이 된다는 식신생재의 원리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 절실하게 요청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이기도 하다. - p.66-68

***나의 수준에서 이해한 주역의 핵심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음중양 양중음陰中陽 陽中陰'의 이치이다. 다른 하나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다. 전자는 '불행 가운데 행복이 있고, 행복 가운데 불행이 있다'는 말이고, 후자는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는 뜻이다. - p.57

by zaniface | 2008/08/25 10:39 | 기록 | 트랙백 | 덧글(0)

하루

- 토요일. 만화책 반납하러 가는 길에 비탈길의 맨홀 뚜껑을 밟고 미끄러졌다. 엉덩방아 쿵. 빗물이 왼쪽 엉덩이에 스몄다. 일요일. 라틴아메리카거장전을 보고 나와 걷다 새똥을 맞았다. 어깨와 가방에 비둘기의 하루가 얼룩졌다.

- 덕수궁미술관. 엔제리너스 무교점. 홍대 코르크. 안녕바다. 일상 같았던 하루. 마누라 만난지 4년.

by zaniface | 2008/08/18 11:38 | 기록 | 트랙백 | 덧글(2)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 B급 영화를 볼 땐 B급 관객이 되어야 한다. 7년전의 상큼함은 조금 퇴색했을지 몰라도, 그 뻔뻔한 유치함과 어이없음, 엉성함은 여전하니 즐기면 된다. 고품격 유머와 스토리 같은 건 당연히 없다. 그러니까 잘난척하지 말고 웃으라면 웃자. 극장용 러닝타임을 버거워하는 후반부는 조금 지루하지만, 전반부는 그야말로 잘 빠졌다.

- 만주 벌판에서 펼쳐지는 외팔이 검객 다찌마와리와 마적단간의 액션씬만은 AAA급. 피어오르는 모래 먼지 속에서의 발놀림을 보면 역시 류승완이로구나, 하면서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야. 하지만 이건 만주가 아니라 영종도. 이 아름다운 백프로 국내 올로케 (한강=두만강=압록강=흑룡강. 알프스=용평. 만주=영종도). - 진짜 만주에서 찍은 놈놈놈이 떠오를 수 밖에. 미안하게도 만주나 영종도나. 공간 상상력으로 따지자면 다찌마와리쪽이 윈.

- 중간에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이 흘러나오는 액션씬이 있다. 총 쏘고 때려부수는 장면에 그때 그사람을 쓰는 기이한 감각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장면에 그게 또 어울린다는 것. 심수봉은 만주(영종도)마저도 휘어감는구나. -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그때 그사람 무한 반복.

- 다찌마와리의 스핀오프가 만들어진다면 류승범 주연의 국경살쾡이로!

by zaniface | 2008/08/13 11:21 | 기록 | 트랙백 | 덧글(8)

다크 나이트

- 수많은 수퍼히어로들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맨은 배트맨이다. 그의 힘은 초능력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돈으로부터 나온다. 배트맨은 범죄 척결에 대한 과도한 편집증을 돈으로 치유하고 있는 중이다. 그걸 히어로라고 불러도 좋을진 모르겠지만, 이 세상이야 돈만 많아도 히어로 아닌가. 그래도 제 딴에는 나쁜 놈 잡겠다고 잠도 못 자고 동분서주 하는 것을 보면 딱하다. 악당은 죽이지도 못하면서, 그 와중에 (어떤 사람에게는 전재산일지도 모르는) 서민의 자동차를 박살내고,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쥐톨만한 위자료 다 털어서 겨우 마련했을지도 모르는) 가게들도 부수고 다니지만, 어쨌거나 히어로 배트맨. 그와 그의 도시에게 느껴지는 연민 때문에 나는 배트맨 시리즈를 좋아한다.

- 진실이 사회를 바꾸는 건 아니라는 결론이 참 좋았다. 고담에 어울리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여전히 순진한 건지 모르겠지만, 사회를 '제대로' 바꾸려면 진실이 필요하다고 믿는 쪽이다. 고담이 계속 고담일 수 밖에 없고, 배트맨이 계속 필요해지는 이유는 그런 왜곡된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가려 장밋빛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힘있는 자들의 자만이자 사회에 대한 기만이다. 당장은 좋아질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할 때 진정 살아남을 수 있는 방편이 생기는 거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해야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다. 그런 거짓말로 인해 사회가 왜곡되기 시작하면, 왜곡된 진실이 진실로 취급되고, 그로 인해 거짓말이 재생산되는 갑갑한 구조가 된다. 멀지 않은 곳에 그런 사회가 있다.

- 마음에 안드는 설정 중의 하나였던 것 중의 하나가 죄수의 배와 시민의 배가 서로의 기폭장치를 들고 대치하는 장면이었다. 그건 고담에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시민의 배에서 기폭장치를 터뜨려주길 바랐다. 우린 깨끗하고 쟤네는 죄인인데 왜 우리가 죽어야 해, 그러면서 기폭장치를 누르면 자기네 배가 뻥 터지는, 그래서 죄인들만 살아남는 그런 설정을 바랐는데, 갑자기 다들 천사가 되어버렸다. - 그런데 저기 죄인들은 왜 그리 온순해?

- 조커나 배트맨이나 똑같이 괴물이다. 조커는 그걸 알아서 즐거운거고, 배트맨은 그걸 알아서 힘든거다. 그나저나 히스레저는 죽이는구나.

- 내부고발자가 나온다. 어찌저찌해서 죽을뻔한 그를 웨인이 살리고 결국 고발자 입을 막게 되는데, 그게 정의인가 모르겠다. 게다가, 웨인 회사는 주식회사일텐데, 주주들의 돈이 웨인 한 사람의 욕망 해소를 위한 연구개발비로 들어간다는 게 정상인가. - 그래서 샘숭 건희 옵빠도 무죄인거야?

- Why so serious?

by zaniface | 2008/08/11 11:58 | 기록 | 트랙백 | 덧글(5)

상상력

며칠동안 생각했는데, '상상력'이라는 키워드로 수렴했다. 이 땅이 불쾌해진 건 상상력의 부재 때문이고, 그런 부재는 상상의 규제로부터 왔다. 몽둥이로 한 세대를 규제하고 동시에 상상을 불허하는 교육을 펼치면, 그 다음 세대부터는 몽둥이도 필요 없어진다. (그 세대가 지금 엄마 아빠가 되었다.) 상상을 못한다는 것은 새로운 생각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논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그게 더 두려운 일이다. 전제가 하나라면 논리는 독이 된다.

by zaniface | 2008/08/08 10:17 | 기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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